연필을 깎기 전 물품을 확인합니다.연필, 연필 깎이, 혹은 칼과 수건.
앞치마를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하고
무릎을 세워 직각으로 자세를 잡고 바르게 앉도록 합니다.
두 팔은 90도로 접어 책상 위에 올리고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합니다.
네? 연필깎기는 마음 가짐부터 바르게 해야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는 작업이므로,
그 준비에서부터 남다릅니다.
...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줄 아세요. 읽다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겨서 실소가 슬슬 나옵니다.
이걸 돈 주고 샀네 나는.......
뭘 또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까지 찍고 앉았어 이 인간은.....
하며 책장을 넘겨봅니다.
다이어리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동안 한 켠에 보관 중인 연필에게도 임무를 부여하기 위한 준비 동작인데 거창하기 짝이 없습니다.
약간의 (아니, 거의 확실하게) 병맛인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름 하여, 《연필 깎기의 정석》
정석은 무슨... 수학의 정석같은 거부감이 느껴질 뻔..했는데
심지어 양장으로 하드커버에요. 쓸 데 없이 고급스럽고 난리야,,,
무려 장인의 혼이 담겼다는 이론과 실제 실습까지를 한권에 정리한 연필 깎기의 바이블!!
이 아니고 컨셉에 충실한 연필 깎기 서비스를 실존하는지 의구심이 돋는 샵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업무(?) 이야기입니다.
이론은 또 뭐고 실제는 또 뭔데..
업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진짜 있는 샵인가? 아니면 영업을 하는 서비스인가, 이거? 싶은 의구심이 자꾸 샘솟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연필깎기 강연까지 하고 다니네 이 양반이;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연필 깎기 작업에 돌입하기 전에 국민체조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앞치마까지 묶고, 프로페셔녈하게 셔츠까지 입어줍니다.
진짜 뻔뻔하다....
테이블에 도구들을 펼쳐 놓은 후에는
이중날 회전식 연필 깎이를 쓸 것인지 외날의 휴대용 나이프로 깎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에서 부터
연필 밥을 어떻게 동봉할 것인지, 뒤통수에서 연필 깎는 완벽한 자세는? 칫솔 대신 연필을 이로 깎는 건 어떨까?
그 와중에 이용 후기에는
연필 깎기 서비스를 받고 도착한 연필을 보고 자신을 너무 업신여기는 시선을 보내는 연필에 모멸감을 느껴 자신을 찌른 손님은 잘 지내고 있는지 등등등..
어질어질한 컨셉충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쓸 데 없이 사진까지 상세해서
계속 보다보면 난 이 인간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연필이나 깎아 볼까-하게 됩니다.
연필의 심을 용도에 따라 다르게 깎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4B연필로 소묘를 한다거나, 캘리그래피를 한다거나...
길게 심을 빼야할 경우도 있고, 날카롭게 뾰족함에만 집중해서 모양을 다듬어야하는 경우 말이지요.
자동 연필깎기가 아니라 면도날이나 커터로 한 땀 한 땀 깎아야하는 이유라던가,
기계식과 수동의 장 단점, 혹은 결과물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난 분명 이런 식으로.. 연필을 쥐고서 칼의 각도는 몇도 정도로 날을 조절해야하는지, 흑연의 종류에 따라 갈아내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등의 실제적인 연필 깎기 기술이 들어 있을 줄 알았더니,
이 정도로 사장님이 미치광이일 줄은 몰랐지 뭐야... (절레절레)
심지어 글감의 도서 목록에도 없어..
나만 당할 수 없지, 누구라도 이 포스팅을 보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연필 깎기 장인을 만나보았다면, 이번엔 비싼 연필을 깎으러 가봅시다.
진지하게 깎지 않고 샤프너로 샤프하게 깎기만 할겁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야해서 답은 못드립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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